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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해외여행

프랑스 파리


예술의 도시 프랑스로 ~~~



프랑스로 향하는 로마 다빈치공항에서 주말이라 이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잠시 당황했지만 남편의 발빠른 상황 판단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에어프랑스 기장님의 배려로 탈수 있어서 행운의 비행을 경험했다.

도착한 샤를 드골 공항은 프랑스의 중심 공항이며 세계7대 공항으로 아울러 유럽의 주요 관문으로 손꼽히는 공항이다. 공항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한가지 하자면 샤를 드골처럼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항들이 몇있다 미국 뉴욕 존F케네디 공항과 텍사스에 있는 조지부시 인터콘티넨털공항, 워싱턴에 로날드 레이건 워싱턴공항등 대통령의 이름을 딴 몇안되는 공항중 한곳이다.  드골은 1,2차 세계대전을 참가하며 프랑스군 사상 최연소 장군이 되었으며 레지스탕스 운동가,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가 작가로써도 이름을 알린 대통령이며 공정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며 사임할것을 약속하여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야를 선택하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신의를 지킨 대통령이였다.  이대목에서 한나라의 리더가 보이는 모습이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놔 보았다.  아무튼 파리는 예술도시 답게 공항건축에도 신경을 많이 쓴듯한 느낌과 깔끔함이 느껴지는 공항이다

프랑스에서 여행의 가장 먼저 한것은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지하철로 가는것이 가장 편리한 곳이다 원래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곳이여서인지 지하철과 맞닿아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느낀것인데 프랑스에서 ‘Sortie’ 라는 출구를 나타내는 말로 프랑스에서는 이 이정표를 자주 접한다.  지하철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붙어있는 ‘소르띠’ 를 보며 역이름이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남편은 웃으면서 앞으로 ‘Sortie’역이 자주 나올것이오! 하던 해프닝도 있었던 ‘Sortie’  하지만 프랑스에서 이단어는 관광할때 아주 요긴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서나 관람을 마친 뒤 모든 일의 마지막에는 항상 ‘Sortie’ 를 찾는다.  

남편과 나의 여행은 항상 그 도시 그나라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으로 관광버스로 여행하시는 분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명한 관광지를 빨리빨리 많이 볼 수 는 없다.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그들과 함께 숨쉬며 그곳에 녹아 있는 느낌이 좋아서 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여행은 가기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기에 의미가 더 깊어진다. 공항이나 호텔에서 여정을 먼저 돌아보고 지도를 핸드폰으로 다운로드한 다음 여정을 빠짐없이 익혀두어야 한다.  이렇게 다니면 길을 잃을 일도 없지만 여성 혼자서는 조금 위혐 할 수도 있겠다.  요즘 핸드폰은 지도 다운로드, 지하철노선표, 번역기도 있어서 다니는데  너무 좋다.


파리의 도로에 곳곳은 마치 피사로의 ‘빗속의 테아트르 광장’ 그림과 같은 풍경이 여기 저기서 볼 수 있다.   길거리 자체가 그림속 풍경이고 길을 걷다가 옆쪽의 골목을 바라보면 영화’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본듯한 거리가 있었다. 짧은 여정으로 가지못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생각나서 찍었다.  외관이 많이 비슷하듯해서 찍어보았지만 사실 꼭집어서 안봐도 여러곳에 이런 건축들이 즐비한 곳이 파리이다.  그래서 천천히 걷는다...



세느강 옆에 자리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은 경관자체부터가 너무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미술관의 자태를 뽑내고 있다.  미술관의 건물은 오를레앙 철도가 건설한 철도역이자 호텔이였다. 미술관관람은 아침에 일찍와도 줄을 서야 하므로 미리 한국에서 예약을 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으니 예약은 필수인것 같다. 오르세 미술관은 지하철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지하철 RER-c 선의 오르세 미술관 역에서 하차 바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미술관은 크게 3개로 나뉘고 그밖에 크고 작은 여러개의 미술관이 있다.  그중  대표적 미술관은 르브르와 오르세 그리고 퐁피두센터가 있는데 크게 루브르와 쁘띠빨래에서는 고대 중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오르세는 19세기 후반 작품들로 구성하고 있으며  퐁피두센터가 현대 미술을 이어오고 있다.  오르세는 고대와 현대를 잊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 있을때 예술에 전당에서 오르세 미술관전을 관람 하긴 했지만 직접 이곳에서 관람을 하는 마음이 더 떨리는듯 했다.  내가 좋아하는 피사로,고흐,고생, 고흐의 스승과도 같은 밀레와 특히 마네 모네, 르느와르, 세잔, 드가, 루소, 마티즈, 조르주 죄라의 마지막 작품까지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기차역을 리뉴얼한 곳 답게 천정에 아치형식의 거대한 돔창이 시시때때로 자연채광을 끌어들여서 자연채광으로 변화를 주어 인상파 화가들의 미술을 관람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의 미술관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컴퓨터로 조정되는 인조 조명까지 어우러져서 더욱 환상적이고 드라마틱한 관람을 돕는다.   
우선 오르세 미술관은 들어서면서 부터 와~~하는 낮은 함성을 몰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앙에 큰홀이 전체 건축과 미술전시관이 되어있으며 가장자리쪽에 자리한 관람실을 다니면서 탁트인 중앙 홀을 중심으로 다니기에도 무척 재미가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가장 많은곳~~ 고흐를 비롯 밀레, 모네, 고갱, 쇠라, 마네, 이번에 대통령 그림으로 논란이 되었던 올랭피아도 있다.  중앙에 로댕과 로댕의 여인 까미유 클로델의 '중년'이라는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여자이기에 환영받지 못했던 그의 예술은 현대에서 더욱 빛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아픈사랑을 승화했기 때문이 아닐까...모네의 작품 '뜰의 여인'등이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페스~~~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놓치면 안되는 컬레션 중 하나인곳은 5층의 인상주의관에 들어가기 전 북쪽을 향해 있는 거대한 창문 시계가 있는 곳이다.  모두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줄을 서있다.  바깥 채광으로 실루엣만 나오는 곳이지만 그래도 파리의 세느강과 도시를 배경으로 예술적으로 찍을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1층에 있는 빅토루 라루 벽시계를 비롯해서 오르세에서는 시계를 자주 보게 되는데  오르세의 역사적 가치를 이야기해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계는 마치 19세기에 머물러 있는듯 그렇게 역사를 머금고 있는것 같아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상징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관람을 끝내고 나오면 한강보다 작지만 낭만이 흐르는 세느강이 흐르고 그곳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잠시 강을 보며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한장 남겨본다.

멀리보이는 샤크레 쾌르 대성당 저 아래 몽마르트 언덕길이 있고 잔다르크 동상도 있다.


나는 여행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준비를 열심히 한다 그러면서 나는 이미 한번의 여행을 다닌것 같은 느낌이 있고 다녀온후 이렇게 여행을 추억하면서 다시한번 여행속에 걷게 된다.   이렇게 다니는 여행은 다시 내 가슴속에 박힌다 여행은 그렇게 내속에 있는 것을 비워야 그곳에 것들을 비울 수 있기에 나를 비우고 새로운 힘을 갖게 한다.  아마도 인생은 삶은 이렇게 비우고 채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얼마 안떨어진 마르스 광장에 있는 에펠탑을 찾았다. 바람이 조금 불고 나중에는 비가 좀와서 추웠지만 그래도 잠시 낮풍경과 따뜻한 오후를 느꼈다.  에펠탑(Eiffel Tower)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국 박람회의 기념물로 107개의 작품 중 에펠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구스타프 에펠의 설계로 지어진 301m의 철탑이다.  에펠탑은 프랑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탑은 아니였다고 한다.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들어 비용의 대부분을 에펠이 내고 20녀간 독점권을 인정받고 완공 1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에펠탑은 20년후 철거하기로 하고 지어진 에펠탑은 구스타프 에펠이 철거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던중 군 송신탑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에펠탑은 지금 프랑스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유독 에펠탑을 싫어 했던 모파상은 어디에서나 보이는 에펠탑이 보기 싫어서 에펠탑 2층에서 식사를 했다고 했다는 이야기와 사람들의 입에 "비쩍마른 피라미드" 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에게 있을 법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당당히 살아 남은 에펠탑은 그래서 더욱 사랑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련과 고통을 지나온 지금은 유럽의 가장 손꼽히는 걸작으로 알려져있다.  반면 당시 에펠을 사랑한 고갱, 샤갈 샤갈은 작품 "에펠탑의 신랑신부"에서 에덴동산으로 날아가는 것을 뜻하는 연인들을 태운 수탉, 파리의 자유로운 햇빛, 구름 러시아 결혼식등 재미있는 배치로 전쟁으로 두려움을 없애주는듯한 느낌을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천재 발명가 에디슨의 극찬과 함께 에디슨은 엘리베이터를 설계했다고 한다.  수천장의 도안으로 정성을 쏟은 에펠탑은 그 정교함이 수준급이라 전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이다음에 역사는 이순간을 이야기 할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혹시 우리의 선택이 파리의 에펠탑을 무너뜨리는 실수를 하지않기를 바랄 뿐이다.  


에펠탑이 딱 보이는 샹 드 마르스 공원이다